내 나이 33살에 나은 큰딸 지은 35살에 나은 막내 딸 지아
은아목장( 恩兒 牧場)의 상호는 딸아이 이름으로 끝자만 따서 지었고 산속에서 송아지와 함께 커준아이들 이다.
지금은 복해도 낙농학원 대학교 에서 식품 과학 과 4학년 학부생이다.
(사진은 스승 이신 안도 교수님이 한국에 오셨슬 적에 모시고 와 통역을 하면서 저녁식사 시간에 찍은 사진)
그녀의 애칭이 쟈 이다.
지아의줄임 말...
쟈는 당돌 하고 엉뚱했다 어릴 적에
목장 경영을 잘 했다라 기보다는 운이 좋은편 이었는지 소들이 잘 자라주었고 우유가 많이 나왔고 소의 생김새가 좋아 일찍감치 전국 그랜드 챔피언을 배출 시겼섰다.
한 동안 목장을 찾아오는 낙농가가 일년에 1000명을 넘겨 밥도 못 먹고 오시는 분 들께 나의 목장경영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기도 했섰다.
그때나 지금 이나 오시는 분들이 불쑥 던지는 한마디의 말로 상처를 받는데
늘 듣는 말이..
재산 물려줄 아들도 없는데 누구 줄라고 이렇게 소를 잘 키우냐 었다.
아들 없이 딸들이랑 목장을 하면 큰일이 나는 듯이 말이다.
말을 안하고 우물쭈물,,,보내곤 했다.
그러나 어느날
경상도에서 오신 낙농가께서 또 그소리를 하셨다.,
누굴 줄라꼬 이리 소를 잘 키우시는겨???
무시하고 념길 려는데 작은아이가 당차게 하는 말이
아들 둘 있는 집 에서 아들 데려다 내가 할 거에요...
그때 그 아이 나이 6살 적이다.
그분들이 집 으로 돌아가고 난 후
아이에게 당돌하게 말 한것에 대해 잘못된 것을 일러줄 겸 차근차근 물어 보았다.
엄마가 괸히 아저씨들 한테 혼 나는것 같아 속이 상했서...
그래도 처음 오신 아저씨한테 그럼 안 돼지...
엄마가 아들 없는게 죄 인가 왜 맨날 오시는 아찌 들은 그딴 소리만 해???
딸 아이 둘은 목장에서 크고 자랐고 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등 하교를 시켜 주느라 12년을 다시 공부를 한셈이다.
목장 일에 매여 사느라 딸들에게 변변히 제대로 도시아이 처럼 이뿌게 가꾸어 주고 머리한번 빗질 해준적이 없이 내 버려두고 키웠다.
지금 생각하면 많이 미안하고 측은하다.
사는게 뭔지 먹고 사는게 힘이들어 아이들은 그냥 내 팽개치 듯이 키웠으니..
그래도 아이들은 잘 자라 주어 고맙기만 하다.
생일이 빨라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선천적으로 날 닮아 계산 능력이 떨어지는가 수학과 물리 화확은 영 젬병인데 작은딸애 산수가 기초가 안 잡혀 고학년으로 올라 갈수록 아이의 성적은 바닥세 였다.
자심감도 떨어지고...
고등학교를 인문계를 보내 농업 학교를 보내고 싶었는데 고등학교를 여주농고로 진학을 하겠단다.
지아는 여주 농고 축산과로 입학을 했고 큰애가 고등하교 였다.
아이들 소망이 읍내에서 학원도 다니고 공부를 하고 싶다는 소원이었는데 문득 이러다 대학을 가던 시집을 가던 스무살만 되면 훌쩍 어미곁을 떠날것 같고 미안했다.
몇칠을 고민 하다 잠시 3년만 읍에서 살겠다 하고 이이들 하고 여주로 이사를 갔다.,
남편은 목장에 남고^^
아이들만 을위해 작은아이가 대학에 들어갈때 까지만 목장 일은 남편에게 맞기고 난 치즈공부를 하면서 읍에서 아이들 공부 뒷바라지를 조금 했다.
일본을 들락이면서 안도 고이치 교수님을 처음 뵈었고 그분의 인품이 감동 지아의 공부를 여쭈었다.
돌 보아 즐테니 데리고 오라고 하신다.
그아이 고 일때 일본으로 치즈연수를 가는 일행을 모아 북해도로 건너가면서 딸애를 데리고 갔다.
낙농 학원 대학교는 교정이 아름다운 곳이다.
9월에 학교 실습실에서 치즈연수를 받으면서 노교수님은 나 몰래 아이의 의중을 떠 보았단다.
너희 엄마는 너를 이곳에서 공부를 시키고 싶은데 너는 어떠니?
공부를 잘못 하지만 이곳에서 치즈에 관련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공부 못 하는것은 중요 하지않고 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니 그럼 일본어 공부릃 하여 대학자격 시험을 봐야한다 열심히 해라 하셧 다면서 오미야개를 싸서 가지고 왔다.
아이는 그후 일본어 공부와 대학입시 공부를 병행 했고.
수시로 건국대 입학을 했고 6개월 다니고 어학연수로 북해도로 건너갔다.
19 살에.
3 개월 어학연수로 일본어 성적은 형펀 없시 나왔지만 마침 그학교에 다니던 대학원 생의 도움으로 한국유학생은 예외로 일본어 실력테스트와 소 논문 면접시험을 보고 입학을 결정 한다는 것을 알았고 아이는 눈이 오는 1월 초 혼자 사포로로 가서
죽기 살기로 시험을 보아 합격을 했다.
입학시험을 치루고 한국으로 오는 날 공항 으로 가니 얼마나 혼이 났는가 입술이 부르트고 퀭 말른 모습으로 와 마음이 언짢았섰다.
지금 아이는 대학 학부 4학년이다.,
한국의 낙농산업이 어려고 고환율이라 학비를 넉넉히 못 보내주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고생이 많다.
내년 3월10일이면 졸업식이고 만4년의 유학생활에 믾이 지친듯 싶어
본인이 하고 싶은데로 두고 싶어 일단은 집 으로 오기로 했다.
당분간 목장에서 그녀가 할일이 많아 쉬면서 진로를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아이는 지금도 목장을 아들 데려다 하겠다고 한다.
남편은 젖을 짜고 본인은 치즈를 만들고 싶단다.
그런 남편감을 데리고 올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