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에게는 친구 같은 후배 같은 싸이버 딸이 있다.
그녀는 이제 쉰을 넘어 가고 있는데 가차은 이천에 산다.
생활력도 강하고 그녀에게 놀란것은 중학교 졸업장이 전부 인게 서러워 아들 둘을 낳고 검정고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립 한경 대학교 낙농학과를 36살인가 40십 전에 막내딸을 놓아 가면서 3학기 반만에 수석으로 입학하여 수석 졸업을 한 집념의 여인이다.
남편은 젖을 짜고 아낙은 농사를 지어 이천 슬로우 푸드 매장에 철철이 가져다 파는 그야말로 지금 정부에서 추진하는 육차 산업을 큰돈 안들이고 하고 있다.
몇년째 내가 먹는 들기름 들깨잎 고추가루 쌀 콩 등 농사를 지어 안심하게 먹게 해주고 서로 징하게 바빠 얼굴도 자주 못 보지만 이천과 여주 각귀퉁이에 살아 그녀집에 가려면 1시간은 운전을 해야 한다.
몇칠 전부터 그가 궁금했다 들기름도 떨어지고
한말 앁어 걸려 들기름을 짜 달라 했고 오늘 그녀도 볼겸 남편이 즐겨 먹는 비빕밥에 넣은 들기름도 찾을겸 길을 나섰다.
요즘 처럼 체험이 변변이 없서한가할적에 한달 휴가를 내듯이 이천 덕평휴게소 근방으로 갔다.
점심시간이니 우리 괴기 말고 보리밥 먹자 했다.
마장 초등학교 앞에 가마솥 보리밭은 어언 10년 정도 다닌집 이다.
항시 고실 거리는 밥에 찬이 변함이 없다.
마침 했살은 이미 봄을 알리는 듯 따스해
주인 마님께 담소중이니 쫓아내지 말라하고 수다 삼매경에 빠져 들었다.
한상에 칠천원인가 나물에 고등어 조림에 날김에 배추쌈에 부리밥 숭늉 까지 맛났다.
고추장이 싫어 강된장에 기름 넣고 비볐다.
햇살이 내리쬐는 창가에는 다육이 들이 보송보송 살아 있고 커단 창문으로는 이렇게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왔다.
입춘이 내일모래인데 아마도 절기는 봄으로 가고 있는듯 싶에 햇빛은 너그러웠다.
그녀와 나랑은 비슷한 아픔과 고민을 안고 살아 간다.
서로 사는 이야기 서방흉 부터 자식 걱정 사는 걱정을 이리저리 양파 껍질 벋기듯이 풀어 논다.
흉늉도 마시고 양촌리 커피도 뽑아 먹고
한시간 반을 노닥거렸다.
그집이 국가 보상에 걸려 이전을 한단다 다음달에는
고앞 어디쯤 이라고 연배 비숫한 안 사장님 둘이 담화에 끼여 들어 모녀지간이요 자매지간이요 닮앗네 하고 거든다.
자매도 모녀두 되고 다 된다 얼버 무리고 우린 깊은 이야기속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속에 담고 있는 기함을 할 이야기를 차마 이공간에 올리지는 않치만 기절 하는 듯 싶어 비벼논 보리밥이 올강 거려 삼킬수도 없슬만큼 입이 안다물어지는 대박사건이다.
어쩌니...
우리 자식키 우는 사람들 젖소 메기고 키우는 사람들은 모질고 독하지 못 하잔니
니도 나도 이제는 어른 축에 끼는 나이니 지혜를 빌어보자 소리 박에 할말이 없섯다.
속이 무겁고 웬만하면 어둠이 얼굴에 나타내는 사람이 아닌데 많이 힘이 들겟다 싶어 말 없시 그녀 이야기 들어주고 내 생각을 잠시 전해 주었다.
속이 좀 시원 할려나 모르겠다.
그녀의 손은 갈퀴 갔다.
농사진거 알음 하여 철철이 매장에 내다 팔려니 오죽 하랴 싶다.
푼돈이 라도 벌어 통장에 야금야금 모아 그녀의 소원이 인도 자유 여행이었다
작년에 그더위 속에서도 이를 악물며 벌어 겨울에 잠시 한가 할 적에 이십일 정도 남부 인도를 여행 할거라 기쁨에 들떠 있드니
돈도 엉뚱한데 다 드가고 산 처럼 높은 아들이 문제로 속을 썩이고 있다.
잘 견디어 웃으면서 지난 날 허허 거리면서 이야기 하자꾸나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