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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달진맘 2016. 1. 17. 19:57

시모 돌아가시어 상심 중에 날아온 청첩장

친정 큰 고모네 오빠네다.

그집 두째가 장가를 간다고  한다니 반가워   오라비 한테 전화를 넣었다.

올케도 연결을 하고

오랫만에 나의 기억은 거희 60년 전으로 기어 올라갔다.

큰 고모는 어린 눈에도 참 이쁘고 고왔다  농사 짓는 촌아낙 갔아 보이지 않았다.

가름한 얼굴에 검은머리 앞 가르마 타서 쪽진 머리에는 은비녀가 꽃쳐 있고 언제나 잘잘 치마를 끌듯 겨울에 모본단 두루마기에 하얀  깃을 드리고 오셨섰다.

 손재주가좋고 음식을 잘 만드시어 근동 동네 큰일에는 숙수로 불려 다니셨지만

옥에티  라고 슬하에 자식이 없섰다.

 나 어릴적에 고모가 오시면 밤새도록   친정어버지 즉 남동생 하고 농사 이야기 세월 이야기도 하시지만 자식 못낳아  소실 두고 사는 가슴 미어지는 이야기를 하시며 울곤 하셧다.

 

그고모가 들인 양아들이 오늘 혼주 이시다.

그오빠는 고모 가 7살인 아이를 멀리 전라도로 가서 데려다 입적 시키고  키우셨는데

고모부가 자기 혈손을 이어 간다고 고모부 나이 쉰이 넘어 소실을 보고 내리 다섯을 낳으셨다.

 위로 딸셋 ...밑으로 아들 둘 ,,,환값전에  아둘 둘을 놓으시고

고모는 그속에 뇌암으로 49세에 돌아 가시고

양아들 은 농사일  접고 서울로 가 문방구 일을 배워 자수성가를 하고  장가를 들고 외삼촌을 오늘 장가 가는 애기 돌날 이라고 불러

처녀 적에  부모님 따라 종암동 단칸 셋방에 가서  돌떡을 먹기도 했섰다,

 

그오빠를 마지막 본게 친정 아버지  장사에 오시어 생질로 마지막 가는 외숙의 묘자리에서 목놓아 울었섰다.

 

그후  사는게 먼지

참 바빠서 그집 큰아들 잔치는 서울 이라 못갔고 부조만 우체국에서 보내고  연락없시 살다  청첩이 오니 여간 반가운게 아니였다.

 

오늘 일요일인데  일찍 길을 나섰다.

 큰일에 소 때문에 안가는 남편이 운전을 해 주고 마누라 운전하다 실신할까 겁이 난단다.

안양으로 가서  돌구 돌아    혼레 식장에 들어  갔다.

새로 지어진 건물   상업적인 웨딩홀이라   깨끗하니 상큼 했다.

원탁을 만들었으면  차 라도 주던지 맨숭 거리고 안자 식을 보았다.

 

 

 생화가 놓인 혼례 식장에서

반가운 분을 볼수가 있다.

고모 살았슬시 얻은 작은 마누라 소생 아들이 어쩜 돌아가신 고무부를  환생 하듯이 닮아 한눈에 알아 보았고

생전에 우리집에 어릴적 데리고 다니던 딸들도 볼수 있섰다.

이젠 세월이  흘러  다 늙어 가지만  어릴적에는 고모 마음 아프게 한 작은댁 아이들 이라고 많이 미웁기도 했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중풍이 걸린 몸으로 우리집 으로 오시어 자식이 무언지 자식  본다고 니그 고모  한테 못한일  평생  후회 한다고  인생의 반성을  하신데 내나이 혼기 전이나 24세쯤 된거 갔다.

 

그후 돌아 가시면서  조강지처 곁에  믇어 달래서  양오빠는 그리 두분을 모시고 후처는 발밑에 모셨다 했다.

세월이 흘러 내가 고모부 나이가  되고 울엄니가 집안  최고 어른으로  집안 잔치에 가셔야 겠기에  생존해 게신 숙부 내외  사촌 들에게 연락  하고

남동생 더러 엄니를 모시고 오라 했다.

 

숙부 내외와 울엄니를 보시더니 눈물이 글썽이며 끌어안는 올케

양오빠 두 내외는 작은 마님 이 낳은 자식 다섯을 다 끌어안고 사셨단다.

데리고 온  딸둘 까지 해서 8남매의 맡이로 살아 오셨단다.

 

 

  요즘 젊은이 들 결혼식은  자칫 생각하기 나름인데

장난 같기만 하다.

주레도 없시

지들 끼리 다짐을 발표 하고 신부친구가 축사를 한다고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고

신랑이 애절하게 신부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자유 분방한데

80줄이  넘으신 친정엄니와 숙부내외는   돼지 목 따는 소리를 지른다 하고 장난  같지 어른들 오라하고  지들끼리 히히덕 거린다    정신줄이 아픈 엄니는 이게 결혼식 맞냐고  물으셔 그렇다고 세번  대답해 드렸다.

 

남편은  식 보지 말고 내려가 밥 먹자 하고

그래도 어른들 모시고 봐야 한다 말려

간신히 식권 타 가지고 원탁 으로 갔다.

 

잘 차려진 음식 ...그러나 뜨근한 가락국수가  먹고 싶은데

뷔페집  에서 노인들이  접시 들고 음식 나르는 수고 없시 주는 대로 받아 먹으니 좋았다.

 

 

 

 80줄이   다가 오시는 숙부내외 ,,,정분도 좋으시고 인자 하신데 이런 큰일 아님  만날수가 없다.

 

큰조카 딸인  날 보시더니 이그 너도 늙어 가는구나...

그럼요 작은 아버지 저도 환갑이 진즉에 지나고 손주가 셋 이에요

 

 허허  웃으신다.

 

나도 가슴 떨리게 드레스 입고 웨딩마치를 울린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어른 대접을 받을 나이고

 항렬이 올라만 가니 참 세월이 무상 하다 싶었다.

 

 

50년 전에 어린눈에 보았던 고모가 키질을 하다 날  보고는 우리강아지 어디같다 오냐고 반기시고 농짝 깊이 숨겨둔 홍시를 가져다 먹으라 하셨던게 래건이 나이적이다.

 

뒷동산에 밤이면 늑대가 울고  햇댓보에  광목에 십자수를 놓아 스위트 홈이라 씌여 있던   휘장을 걷어 보면

치마를 길게  걸어  놓으셨던  저고리랑 함께  누우런  한폭의 흑백사진을 본거처럼 생생하게 흐릿하기만 생각 나는  어릴적 추억이다.

 

 잘들 살겠디노라고  \\\\\서약을 했으니 잘 살겠지..

잘 살거라...

애들아...추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