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못 속인다구 입술이 브르트고 온몸이 삭신 쑤시듯이 아프다.
그렇더고 밀린 일 안할수도 없고 거니렁 가리고 있는데 입맛이 모래알 씹는듯 싶다.
고생 했던 딸은 펄펄 나르는데 이래서 나이탓 이라 아른들이 쉰에는 쉰맛이 난다고 하셨단거 같다.
미역을 담구어 커다란 냄비에 사태 덩어리 넣고 국을 멱국을 안쳣다.
투가리에 팔팔 끊여 따순밥에 목을 축이고 싶었다.
미역국 이라면 15년 전 호주에서 사고로 다리가 분 질러져 함게 젖소 쑈를 구경 같던 친정 엄마와 중학교 2학년 큰딸 초등학교 6학년 작은딸이 먼져 귀국을 하고
멜버른 의 한병원에서 대수술를 받고 15일간 병원에서 있섰다.
아픔 두려움 고통으로 일주일은 긂은것 같았다.
병원에서 하루 3끼 식사를 예약 주문해 주는데 빵조가리 스프 야채 사라다 서양식 음식이 안 넘어 갔다.
하루는 호주사람 토니가 비빕밥을 시켜 아이스박스에 담아 갖고 와 먹으라 준다.
( 음식반입이 안되는데 하두 긂으니 보호자한테 연락을 취한듯 싶다)
일주일 만에 통증도 가라안고 먼하늘 비 오는 멜본 하늘만 쳐다보다 이러다 죽으면 안되지 싶어 그들 음식을 주문해서 조금식 먹었지만
반찬만 먹고 밥은 안 먹은것 같고 시원한 미역국이나 콩나물국 한사발 먹었으면 원이 없겠다 싶었다.
여행자 보험이 되어서 보호자가 데릴러 오게 됬구 남편이 외국어두 신통찮고 집에 소를 두고 갈수가 없서 내가 소속 되어있는 젖소농가 임원들이 회의를 하고
결국은 소 풀을 ( 조사료) 대어주는 무역을 하니 외국어가 능통하고 배짱 좋고 여행을 줄기는 분이 자청해서 36시간을 비행기를 타는 여정을 감내 하고 데릴러 오셨다,
멜버른에서 토니 가족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시드니로 가서 대한 항공을 탔다.
시드니 지점장님 휄체어를 밀어주고 기내에서 나온게 미역국이었다.
집에서 다린 소고기 미역국 맛은 아니지만 단숨에 한그릇을 비우고 데릴러온 호주 따링( 그렇게 불렀다 친구들이) 의 국 까지 다 먹어 버리고
노래를 흥얼 거렸다.
그후로 몸이 고 되거나 고단하면 솥 단지에 미역국을 끊여 부부가 한사발씩 먹어 댔다.
그전에 딸을 놓고 미역국을 끊여 놓으면 남편이 나보다 더 많이 먹어 딸만 낳았다 산관 해주런온 동네 할머니가 놀리기도 했섰다.
그제 부터 미역국을 끊여 식구들이 마시고 있다.
몇칠 더 지나면 나아 지겠지만
봄바람에 살랑 거리니 땅속에서 새순들이 쏙쏙 디 밀고 나와 쑥도 띁어야 하고
원추리 뽑아 살림도 나아 주어야 하고 참으로 바쁘게 생겻다.
입맛이 돌아 한대접 미역국에 밥을 꿀맛 처럼 먹고
훌훌 다녀야 하는데...
몸은 아직도 매맞은 것처럼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