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위클리 우먼 인터뷰^^

달진맘 2010. 6. 27. 04:52

‘자연을 담은 은아목장’의 조옥향 대표
‘패밀리 비즈니스’로 ‘우유가공 체험목장’으로 우뚝 서다

크리스마스.jpg

  은아목장을 찾는 사람들은 은아목장의 조옥향 대표를 보고는 ‘이모처럼 다정하다’느니 ‘친근한 고모 같다’느니 하며 저마다 정을 느끼고 간다. 마치 ‘외갓집에 온 것처럼 편안한 인상을 받고 간다’고도 한다. 이처럼 조옥향 대표는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마력을 갖고 있다. 은아목장은 농촌의 정겨운 체험목장으로, 친환경적이고 자연의 정취를 가득 담은 목장으로서 국내 최고의 양질 우유를 생산하고 있다.   

  푸른 초원 위의 ‘은아목장’
  KBS 인간극장 <저 푸른 초원 위에>를 시청한 사람들은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금당리의 은아목장을 기억할 것이다. 소아마비로 다리뼈가 다섯 번이나 부러지는 아픈 고통을 겪으면서도 자연을 담은 아름다운 목장을 만들어낸 조옥향씨(58세). 그녀는 남편인 김상덕씨와의 사이에 두 딸을 두고 있다. 큰 딸인 김지은의 이름에서 ‘은’자와, 둘째 딸인 김지아의 이름에서 ‘아’자를 따서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이 아름다운 은아목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조옥향씨의 아버지는 치과의사였으며, 그녀는 2남 3녀 중 맏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왼쪽 다리를 못 쓰게 된 맏딸 때문에 항상 수심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26세 되던 해 건설회사에 다니던 김상덕씨와 결혼을 함으로써 아버지는 듬직한 사위를 보며 한층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했다. 결혼 후, 조옥향씨는 고향에 가서 목장을 하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목장은 가난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며 만류했으나 공기 좋은 농촌에서 생활하면서 몸이 약한 남동생의 건강도 회복하고 건강한 심신을 위하여 젖소를 키워보겠다고 졸라 결국 남편을 설득하였다고 한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황량한 산속에 텐트를 치고 개울물에 쌀을 씻어 나뭇가지를 주워다 밥을 해먹어가면서 톱으로 나무를 베어내고 따비, 괭이로 나무뿌리를 캤다. 보통 남들이 30분 걸려 할 수 있는 일을 그녀는 3시간이 걸려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활하는 동안 다섯 번이나 미끄러져 다리뼈가 부러지고 많이 괴로워할 때 남편은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9.3ha라는 면적을 갈아 일구어냈다. 그렇지만 목장을 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다. 산림훼손이란 이유로 목장허가를 내주지 않아 1년 동안 관계기관을 찾아다니며 설득한 끝에 겨우 허가를 받아낼 수 있었다. 전두환 정권 당시 소 값 파동으로 젖소 3마리 값이 아파트 한 채 값이었다. 젖소 3마리로 동생과 함께 1984년 경인목장에서 낙농을 시작했다. 혈통 있는 젖소를 만들어 유질이 좋은 젖소를 만들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생각한 그녀는 소의 족보를 만들고 소마다 이름을 붙여 여물을 줄 때도 소의 이름을 부르곤 했다고 한다. 별을 보고 풀밭을 매며, 달빛 속에서 아픈 다리를 끌고 풀을 뜯었다. 그러는 사이에  딸 둘이 연년생으로 태어났다. 큰딸은 지은, 둘째 딸은 지아로 이름 지었다. 그리고 딸들의 이름 뒷자를 따다 은아목장으로 간판을 걸면서 1990년 남동생과 같이해온 경인목장에서 독립하였다.
  조옥향 대표는 우량 젖소를 생산하기 위해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우량의 정자를 수입하여 국내 최초로 미군납 우유로서 합격의 영광을 얻어냈으며, 파스퇴르에 납유를 하는 자격을 취득했다. 또한, 96년 우량 젖소 품평대회인 ‘한국홀스타인 품평회’에서 챔피언을 획득하고 각 부문별로 11번을 수상하는 영광을 이루어 냈으며, 그 부상으로 가게 된 일본 연수에서 조 대표는 일본 목장주로부터 “부부 둘이 1톤의 우유를 생산했을 때 4식구가 먹고 살았는데, 그 1톤으로 치즈를 만들었더니 50명이 먹고 살 수 있더라”는 말을 듣고 눈이 번쩍 띄었다고 했다. 단순히 우유 생산에만 주력하던 우리의 낙농업 현실에 하나의 지침과도 같은 말이었다. 그녀는 그때부터 ‘수제 치즈’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들 뒷바라지와 산더미 같은 목장 일로 유학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수제 치즈 관련 단기 강좌를 열정적으로 찾아다니며 배웠다고 한다.    체험목장으로 ‘수제치즈’ 생산
  우리나라 농가들은 생산만하였지 가공기술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우유를 먹지 않아 남아돌아가는 우유를 처리하기 힘들었다. 농가유가공제품을 만들려고 해도 축산물가공처리법의 규제에 막혀 엄두도 못냈다. 회사 위주로 만들어진 규제를 보면 유가공검사실이 10평 이상이어야 하고 수의사가 있어야 하는 등 복잡한 규제 때문에 목장유가공제품은 만들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목장유가공연구회를 만들고 농가목장에서도 가공할 수 있도록 치즈나 아이스크림, 요구르트 등을 만들게 해 달라고 우리나라 법 규제를 완화시켜줄 것을 관계기관에 찾아다니며 “맛있으면 먹을 것이다”고 진정도 올리고 호소도 해 보았지만 결국 축산에 관심이 많았던 농림부장관에게 규제를 풀어달라고 메일을 보내어 7년 만에 규제가 완화되었다. ‘축산물가공처리법’의 개별 목장 유가공 제품 생산 및 판매에 관한 조항이 조옥향씨의 노력으로 완화됨에 따라 본격적인 솜씨를 뽐내볼 생각이었다. 우선 직접 만든 치즈를 들고 이탈리아 전문 식당을 찾아갔다. 이탈리아에서 수입해 온 치즈와 자신이 만든 치즈로 조리한 후 맛 평가를 부탁했더니 결과는 조 대표의 치즈가 우승이었다.
  이렇게 조 대표가 만든 치즈는 둘째 딸의 힘이 컸다. 둘째 딸은 일찌감치 여주자영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낙농학원대학에서 ‘치즈 공부’를 했다. 딸은 “수제치즈를 들고 세계로 진출하겠다”는 야무진 목표도 세워놓고 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조 대표는 ‘자연을 담은 목장’이란 브랜드로 치즈, 버터,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을 본격 생산하고 이를 체험목장에 접목하여 아이스크림이나 버터를 직접 만들도록 하여 도회지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산지식을 공급해 주고 있다.
   은아목장 체험실
  은아목장은 6천 평이나 되는 잔디밭과 축사 2동, 체험실, 치즈가공공장, 펜션 등 2만 1천 평이나 된다. 도회지에서 갇혀 있던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에 아이들이 직접 소 젖 짜기, 예쁜 송아지에게 우유 먹이기, 트랙터로 목장 길 따라 동네돌기, 젖소에게 여물주기, 아이스크림 만들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4년째 실시하고 있는 체험목장은 한국 학생들은 물론이고, 1년에 3000여명의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폴, 대만, 일본 등지의 외국인 학생들까지 실제로 치즈를 만들어보고 가져가기도 한다. 젖소에게 정이든 아이들과 함께 펜션에 투숙하고 있는 부모들도 많다. 조 대표는 영화를 좋아하는 남편과 함께 앞으로 체험실에 영화관도 만들 예정이다.

   여성이 한국 농업의 ‘희망’
  조 대표는 요즘 두 달에 한 번씩 중국 지린(吉林) 성에서 ‘낙농기술’ 강의를 하고 있다. 그가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 축산사료 회사가 주최한 교육행사인데 현지의 반응이 대단하다. 중국 정부에서도 목장을 마련해 줄 테니 직접 경영하며 기술을 전수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한·중·일 세 나라 모두 농업인, 특히 여성 농업인은 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어요. 하지만 여성이 농업의 ‘희망’이라는 점도 공통점이지요. 여성들은 원래 서로 돕고 배려하는 특성이 있잖아요. 국제 교류를 통해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 한번 도전해 볼까요?”하며 웃는다. 어떻게 하면 농촌 여성들이 귀농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겠는가를 묻자, 여성농업인들이 자리를 함께 하면 한결같이 “일도 많고 살기도 어렵다”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 농업은 정년이 없고, 자연과 함께 인생을 배우는 덤까지 있으니 이보다 생산적인 일은 없다”고 대답한다는 조옥향 대표는 “몇 배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창의적 산업분야가 바로 농업”이라고 말한다. 젊은 여성 CEO들에게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을 묻자 그녀는 자신 있게 대답한다. “하루아침에 성과를 내다보지 말고 멀리 10년 앞을 내다보고 투자를 하고, 인터넷 등 첨단 정보망을 적극 활용하여 ‘정보 리더’가 될 수 있어야 하며, 농업선진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정부 및 관련기관 등에서 진행하는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견문을 넓혀 나가야 하며, 끝으로 농업은 부부가 함께 업무를 분담해야 성공한다”면서 “한국 농업의 희망은 여성과 가공산업(부가가치형 상품 개발)에 있으며 여성 농업 인재를 키워내기 위한 교육정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