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일상

이동필장관을 뵙고

달진맘 2016. 8. 17. 04:53

  낙농업을 하는 농가의 아낙으로 35년 차를 이곳에서 살다보면   행정적이나 정책적으로 항시 목이 마르고 답답하다.

  오지랍에 너른탓으로 안주 못하는 내팔자나 업보로 생각하지만 안타까울적이  많았다.

 

여자이기에  당 했던 서러움이나 아품은 새삼 끄집에 낼것도 없지만  늘상 허전함을 갖고 살아간다.

어쩌다 그냥  젖소 키우다 땅값 오르면 팔고  건물사 세나 받아 먹고사는  남들 다 하는 길을 갖으면 이런 새벽에 밤잠 못자고 아파하는 일도 없으련만

지나간 일 이지만  참  안타깝고  자식들 까지 뼈를 깍는 고초를 주고 사는게 아닌가 싶어  가슴을 찢짓는 일이 종종 있다,

 

난 정치적인 이념이나  편견이 없다.

 

농사꾼 으로 농부로 젖 짜고 자식들 하고 먹고 사는데 어려움만 없으면 야당이건 여당이건 상관이 없다는 주의이다.

 

35년을 이곳에서 살다가 많은  행정가들을 멀리서 보았고 뵈었지만  퇴임 하시는 이동필 장관 만큼  국경없는 수입개방화시대에  격변기에 농업에 페러다임을 고심 하시던 학자 출신 장관은 본적이 없 없는듯  싶다.

 

농담으로  이분 별명이 오동필 이었다.

오년 동안 장관직을 하시길 바라는 농심에서 나온 소리 이겠지만 현제로 서는 최장수 장관이신것 같다.

 

3년 몇개월을 하셨으니...

외국에서 가면  특히 독일에 가서 연수를  받을 적에 제일 부러웠든게 지역  한국으로 말함  도 축산국장쯤 되시는 분이     30년을 근속 하시어  우수개 소리로  누구네 집 농장에  수저가 몇개가 있는지 까지 아시는 분들이 행정을 맞아 보시는거 였다,

 

한국에서  이년 주기로 바뀌는  정책을 입안 하시는 분 많이 보아왔고 새로이 부임하시면 엄무을  알만 하면 자리가 바뀌고  하는 관행을 많이 보아와서  그병패 속에 아파하는일이 하도 많이 격어와서 이다.

 

15년 전에 일본 북해도에 가서 농협에 젖소담담 육종 전문가를 뵈었는데 그분이 뼈아픈 말을 하신다.

명함을 보시드니 ...

한국에는 당당자가 전문가가 아닌 분도 보직을 맞고 얼굴 알만 하면 다른 자리로 가서   얼굴 익히기도 힘이든다고...

그래서 전문성이 결여되서  발전을 하겠냐고 걱정겸 비이냥으로 들렸다,

 

그래  더많은 엄무를 익히고 최고 경영자가 되서 두루두루 전문적인 식견으로 소임을 다 하라는  취지 같다고 얼버무렸지만   전문성이 결여되어고 행적적인 능력으로  늘상 격어본 일이기에 일침을 하나는 그분 말씀이  밉게만 들리지는 않았섰다.

 

농촌 경제 연구원에서 학자로 계시다가  박근헤 정부에서 농림부 수장이 되시고

발로 뛰면서  노력 하시던 걸로 기억이 남는다.

이미 낙농 6차산업 이라고 이름 짓기전에 이길로 들어선 난

덕분에 장관님을 서너번 공식행사에서 뵈었고  은아팜에는 공식방문이 1번 비공식 방문이 1번으로  두번을 뵙고 낙농에 6차산업에 힘을 맞추어 주셨다.

 

 

 작년 이맘때 비공식으로    주말에 오신 날 사진이다.

세시간을 머무르시면  낙농업에 6차를 가는길을  고심 했섰다.

 

그후 올봄에  규제개혁을  은아목장에서 3월17일  치루었고   이달부터 식약처에서  목장 육가공 검사주기 완화및   유형별 검사를 한가지만 하는것으로 끌어 내게 해주셨다.

 

그리고   낙농진흥법에  목장 유가공을 넣어 행정적으로 소규모 낙농 유가공 목장도 농가 사업으로 보호를 받을수 있게 되었다.

 국회 입법절차가 남았지만 정책적으로 입안되게 잘 되리라 믿고 싶다.

 

어제 인테넷으로  퇴임 소식을 듣고는  예상 했던 일이지만 아쉽고 또 서운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난  이장관님을 뵐적 마다 이웃 아저씨  같아서   딱딱하고 사무적인 분이 아니시것 같아 보여 좋았고   엄무를 조율 하시면서 일을 끄집어 내시는데 감탄을 했다.,

학자출신이라 그러신가   행정만으로 평생을 보내신 분의 권위적인 자기 주장 보다는 합리적으로 해답을 찾는 게  참 좋았섰다,

 

 

내가 기억하는  기억에 남는 장관님은 몇분게신데

그중에  지금   eunas   farm   을 꿈 꾸게 해주신분이  고 노무현 대통령시절에 박홍수 장관 이셨다.

 

 

 

이사진을 오래전 사진인데

김대중 대통령께서 여성 농업인에게 행정적으로 힘을 실어 주셨더면   ( 최초 농림식품부에 여성 정책과를 만드신분 )

노무현 대통령시절에 박장관께서는   농촌  여성들에게 자리를 힘을 실어주셨다.

 

유쾌한 여성 농업인  이라는 책 출판기념을 농림부에서 점심도 김밥으로 때워 가면  진행 했던 시절 사진이다.

 

앞에 고 박장관 이시고 담은 김학수 차관 님이시고 그담이 발언하고 있는 젊은날에 내 얼굴

 

이미 6차사업화 전에   사진이다.

당시 박장관 축산 자문위원으로 일을 했다,

 

목장 유가공이    태동을 하고 그나마  까다로운 법령을 고쳐 가면서 접근할수 있게 해주신 분이 박홍수 장관이셨다.

유가공 처리법에  대규모 유업회사에 맞는  검사기준을 고치게 해주셨다.

그후 10년만에 이동필 장관께서  농업에 6차산업화로  규제개혁으로   목장 유가공에  제품검사 주기나 방법을 바꾸어 주게 하셨다.

 

요즘 난  날이더워 힘이든것도 있지만 농업이 낙농업이 점점 경쟁도 치열하고 어려워져 가 차라리 지난날 젖만 짜고 살던시절이 그리워져 갈때가 많이 진다.

 

오늘 아침에도 새벽에 일어나 제품을 만드는 제주도 농가랑 카톡을 하면서   경쟁이 치열하고 살기가 녹녹치 않다고 푸념을  했다면

 

어쩌겠는가    닥친 현실이고 변화하는 시대  격변기인데    주저 안슬수도 없고  가야할길 이면 묵묵히 가야겠다 싶다.

 

어제는 말복이고 더운날이었고

가물을 타는가 수도물도 고장나 늘어져가는 꽃들에서 물도 줄수가 없게 더웠지만

이동필 장관 님의 퇴임  소식에 마음이 하전한 날이었다.

 

 다시 본연의 학자의길에서 목묵히 농업에 갈길를 고심 하시리라  믿고싶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건강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