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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 작은딸사진

달진맘 2016. 2. 13. 20:27

내일 작은사위 즉 지아남편이 미국으로 3개월 출장을 간단다.

국가에서 보내주는거라는데 내용을 이해 를 못해 무슨 일로 가는가는 모르겠는데  대단히 여럽게 선정이 되어 가는것 이란다.

아마도 정서방이 개발한  카메라를 미국시장에 팔 요량으로 그러는거 같다는 추측만 하고 있다,

 

바빠 설 명절에도 안오고 어제 밤 늦게 페이스북에 지난 사진을 올렸기에 살짝 퍼왔다.

지아가 22살 적에 찍은 인간극장 저푸른 초원 위에  한장면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

그녀는 이제 30살의 애엄마가 되었고  송아지는  커서 새끼를 몇마리 낳았으니

 

 

 

어릴적에  우리집에는 전국에서 낙농의 조사료 사육을 보러 많인 농가들이 방문을 했다.

대부분 남자 사장님들로 그분들은  무심코 비수 같은 말로  나에게 상처를 주고 갔다.

아들도 없는데 누굴 줄려고 소를 개량을 해서 한국 최고의 젖소를 만들고  유대를 어찌 했기에 미군납에 합격권을 취득하고

그리 극성을 떠나고

지은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러 학교에 주민등록  등본을 제출하니 교감선생님 가여운 눈빛으로 불상해 어쩌

아들이 없으시네  츳츳!!!

어느날 경북 대구 근처에서 남자 낙농가들이 하나 그득 버스를 타고  왔다.

설명을 듣다 아들타령이 또 나왔다.

 

그때 지아가 6살 정도 인데

아저씨 이담에 내가 아들  많은집에서 아들 데려다 시집가 목장 할거니 엄마한테 아들 없다는 소리 고만  하세욨  했다.

어린게 말 하는게  어이가 없서 누가 그딴 소리를 너에게  가르쳤나고 물었다.

 

엄마가 아들이 없다고 사람 들이 업신 여기는것 같아  그래서 화가 나서 내가 그리 말했서.

그아이는 지금도 아들같은 딸이라  부른다 남편이

인문게 중학교를 나오고 여주농고를 간대서 잠시 걱정을하다 그녀의뜻을 존중해 여주농고 축산과에 입학을 하여

농기계 운전 자격도  취득하고   목장의 주인으로 가춰야할 덕목을 공부 했다.

실지로 사위는 차남이고 이곳에서 지아는 목장일을 하고 본인은  주말부부로 지내겠다 했다.

그리하고 있다.

 

 

 

 

여주농고 2학년때  엄마를 따라 북해도 낙농학원대학교에 유가공 실습을 가면서  안도 교수님을 만났고 그분의 마지막 제자로 학부를 일본에서 하면서 3학년때 잠시 나와  가족들이랑 찍은게 인간극장 저푸른 초윈위에  5부작이었다.

 

 

 이사진은 사위 친구중에 사진을 찍은 작가가 게신데

구분이 작년 여름휴가에 오시어 찍은 사진이다.

지아가 큰아들과 여름날 망중한을 보내고 있고 쉬추 개가 옆에 지키고 있고 황화 코스모스가 피여나기 시작할 무렵 인듯싶다.

 

지아는 지금도 작업복을  일본에서 사다 입고 있다.

머리에 두건을 쓰고 이침 저녁착유시간에는 이런 일복으로 일을한다 붉은 장화를 신고

낮에 유가공 실에서 치즈를 만들려면 백장화에 하얀 두건 하얀 옷을 입고 카리스마 넘치는 날카로움을  자식같은 제품을 생산한다.

 

대부분 어른들이 나더러  인물좋은 딸들을 팔자 세게 직업전선에 내몰아 일에 치게 하고 사느냐고 참 어리석은 생각이라 한다.

 

난 여자라도 직업이 있고 전문적인 식견과 사명감으로 인생을 살았으면 했다.

그리고  농업이라는 직업  낙농이라는 직업이 어렵고 힘이든 일지만  여자도 당당히 자기 능력과 취미와 적성을 살려 얼마든지  평생직업으로 대를 이을수 있는 좋은 직업으라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제도 작은딸은 엄마  애들이 여섯 다섯살이니   싶여년만 지나면 애들이 나처럼 목장일   할수 있고

나도 애들은 북해도 낙농학원대 부설 고등학교 넣고 카나다로   유학을 가게 하고 싶어요

 

니생각이 그러면 애들이 따라오겠다  하면 할수 있겠지

 

그녀는 지금 분당으로  내일 출국하는 남편 을 만나러 갔다.

그녀편에  장모의 정성으로 죄끔  딸라를 바꾸어  보냈다.

 

이국에서 배고플적에 맛난 밥이라도 한번 사먹으로라고

집 걱정 말고 사위가 돌아올 무렵이면  체험장과 공장이  다완공이 되어져 있으려는지

 

세월을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