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수빈이 설날에

달진맘 2014. 2. 1. 10:19

  목장에서 명절은 고문과도 같아 일주일 전부터 장 보고 준비하고 당일에는 남편이 소젖을 짜고 와야 차례를 모시곤 했다.

그전에도 동서나 시부모님 들은 손님처럼 전날오시어  훌쩍 당일에  차례 모시고 가니 차라리 나혼자 준비 하는게 마음이 편하여

 미리와라 왜 안 오냐 일절 말을 꺼내기 조차  싫어

내몫 이려니 했다,

 

당연히 결혼하기 전에 딸들이 거들었지만 ...애 들은 입이 퉁퉁 부어 왜 엄마만  고생이냐고 한소리를 하는것을

내가 허기져 기름진 음식 실컷  만들고 친척들 불러 먹이고 싶어 하는것이니 불평을 말라 했다.

 

지금은 얼마나 편 하고 여자들이 살기 쉬은세상인가.

 

장에 나가면  얼마든지 재료 장만 하기  쉬은데

 떡국 떡도 방앗간에서 썰어 팔고

눅두도 기피된것 팔아 불에 불리고 갈기만 하면 되구

수정과도  생강과 계피 따로 삶기만 하고 설탕 간만 넣으면되고

식혜도 그렇고

삼적도 두부를 하나 돼지를 잡아 생선도 얼마든지 장에 가면 크다란것 생싱한 생물 살수 있고

 

그래도 사날은 서서  나박김치 담구고 부터 서서 있섰다,

 

명절날   차례를 지내는데 남편이 축문은 안 읽고 제사 법도를 몰라 뒤죽박죽이라

진설하는것 부터  다시 봐주고 ( 난 친정 아버지 덕분에 제사 지내는것은   전문가 수준이다   친정에 일년에 11번의 기제사와 차례를 받들어 시집 오기 전에 엄마의 일등  조수 였다,)

좌포우회  홍동 백서의 기준에 의거하여 진설을 했는데

살아생전 시부님은 너무 다른  제사풍습이 놀라 자 빠질번 했다.

아들 셋을 데리고 축문은 커녕 구벅 절 두번 하시드니  먹자아 하고 안자 떡국을  자 시는데 울 친정아버지 생각이 나  시집을 잘못 왔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충격이 었다.

 

그리 30년을 이제는 내가 내마음을 헐어 버렸다,

 

축문을 읽고 경건하게 제를 고하는 풍습을 시어비님 한테 못 배웠고   못 가르쳤으니 후대에 아들도 없고 하니 내대에서 끊어질 일이고

너무 몰라  잿상 앞에서 제멋대로 인것 나무 라지 말고 내가 포기를 하자고 결론 지었다.

 

그러나 음식은 절대 함부로 안하고 내가 배운대로 하여 상을 차렸다.

오죽하면 이십년 전에 제사상을 나에게 넘긴 시모님 하루는  차롓상 앞에서 떡 버러지게 차렸다고  빈정 거리는 말투에

 

자손들이 크게 잘 되라고 생선도 큰것  제수장은 크고 좋은것 귀한것 놓으라고 배워 그리했다고 하니 벌레 앂은   표정 이시었다.

 

 

  올해는 시집에서 아무도 안와

남편혼자 차례를 모시고

 

떡국을 먹고

 친정  사촌들이 차례를 모시고 가다 들렷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 일년에 두번  얼굴 보는 사촌들 과 조카들 자라는 세월이 대견하기만 하다.

 

수빈이 지난 추석에 손님한테 선물받은 한복을 입고 세배를  인사를  했다.

 

 

 

  돈주머니를 차고 안자 두런두런  어른들게 인사를 드리는 수빈

작은딸은 시댁에서 안오고

큰딸은  집에서 함께 지내게되어 수빈이가 단연 압권이었다.

새생명을 상면하고 안아보고

다들 새로운 생명에 경이로움을 표했다.

 

 

 막내 동생이 큰손으로 따로를 하니  수빈이  곡두깍시 처럼   팔로 중심을 잡고 오뚜기처럼 서있고

30년전에 니엄마도 이렇게 해줫다 ...

젊은  할아버지는 대견해 손녀딸을 안아 주며 늙어가는  사촌형제들  얼굴에 골이 패이고

머리는 반백이 되어져 간다.

세월에 장사없고 십년후에는 어떤 모습일련지

상상이 되어진다.

 

속옷도 안 입고 버선도 안 신고 당돌한 아가씨

캉캉춤 추둣이 치마를 들추어  웃고  또 웃고

모두 즐거운 설명절 이었다.

 

한두사람씩 돈을 두고 가 수빈이 복주머니가 두둑했다.

 

밤에 놀랐는가 아이가 열이나고 잠을 안고 보채

할미와 어미는 파김치가 되었다.

 

 올해 설날에는 수빈이  캉캉춤으로 새배를 대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