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전에 심은 밤나무
작은딸 집 옆에 는 내 나이 18살에 내려와 접을 부친 밤나무가 있다.
밤은 토종이라 하나 작은 도토리만 한데 작지만 맛은 기가 막히게 좋다.
알밤이 뚝뚝 떨어지는 지금은 친정 엄니 정신 이 이곳에만 쏠려 게시다.
바람만 불어도 툭툭 떨어지는 알밤을 주워 담으시느라 그제도 수빈이 업고 지고 알밤 주눠 다라이에 담아 놓고 골라
찌고 말 리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 이시다.
오늘은 mbc 라디오와 인터뷰를 했다,
추석날 나갈 방송인데 경제를 다루는 시사 토크인가 본데
요즘 화두인 농업 6차 사업 관련 내용이었다.
밤 이야기를 하다 웬 6차 냐고 하겠지만
오늘날 내가 이렇게 이곳에서 살게 해주신 분이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 이시고 그분의 삶의 철학대로 난 실천에 옮 길 뿐이다.
가난한 집안 선비가문에 출세도 못한 집 4형제중에 두째의 장남으로 태였지만
친어머니의 급작스럼 죽음과 아들 딸린 서모의 재혼과 이미 아들이 형제라는 운명으로
자식이 없는 큰집에 아들로 입적이되어 간 나의 부친은 큰어머니의 걸직한 사랑 속에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큰어머니가 돌아 가시자 다시 재혼한 큰 아버지..
전실남편의 딸 3명을 데리고 물레방아간에서 빌어 먹는것을 후실로 들이신 아버지의 조모께서는 상처한 아들이 살길이 막막해서 그리하셨겠지만
서모는 들어와 할라버지 나이 50에 아들을 얻고
눈치 밥이 장난 아닌 부친은 14살에 노자를 구할돈 이 없서 지금에 목장터에서 나무를 주워 팔아 서울로 상경을 했단다.
그때 나무를 하면서 웅장한 산세의 목장터가 당시에는 일본인들이 소유인데 어린맘에도 갖고 싶은 꿈을 잉태를 했섰단다.
그후 부친은 독학으로 검정고시에 패스하여 25세에 치과의사가 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사 셨는데
전쟁으로 알거지가 되고 고향에서 낙향 공산당을 피해 숨어살다
34살의 노총각 육 이오 난리 피해 피난온 17세의 모친을 만나 물 한대접 떠놓고 혼인을 하고
가난하고 배고푼 시골에서 살다 배가 고파 미쳐 추수도 안한 볏단 가져다 방아져서 밥해 먹었다고
쏘사 거리는 양 서모의 고자질에 격분한 양조부한 테 두둘겨 맞고 그날로
어린신부를 나를 가진 새댁( 모친) 을 아는분 곁방에 두고 서을로 취직을 하고 도강증을 받아 한강다리를 건넜다 한다.
18살의 어린신부는 낮 이면 나무를 해다 방을 덥히고 쌀 두말 뀌다 놓고 간 아버지가 데리러 올날만 기다리면서 군불만 지피면
안채에 인정많은 주인장께서 밥을 한그릇 더해 친정 엄니 배를 채워주셨다 했다.
그댁은 지금도 감사한 그은혜를 잊지못해 왕래를 하고 지낸다.
서너달후 배가 부른 엄니를 데릴러 오신 부친 지금 서울 용두동 청량이 미도파 백화점 자리에 허름한 팟자집 월세 얻고
엄마는 나를 낳으셨는데 소창 끊을 돈이 없서 낡은 부친 겨울내복 띁어 만든 기줘기에 오줌 받아내면 키우셨단다.
자수성가 하신 부친 ...가난 속에 혼자 힘 겹게 월세에서 전세 그리고 남의 월급쟁이에서 치과 의원을 갖기위한 피 나는 노력 끝에
영등포로 가서 자리를 잡으셨고 그곳에서 50년세월를 치과의원의 원장님으로 사시다 폐암으로 78세에 돌아가셨다.
어릴적에 아버지 진료실에 가면 부친은 농부의 자식이 아닐가봐 매일 농사 걱정 이셨다.
여름에 가물에 모를 못 내면 비가 오길 고대 하셨고
이빨 뽑아 번돈으로 동생이 양수기 사 달라면 사 주고 가을에 마차 꾸미게 소 사 달라면 소 사주고 마차 꾸밀돈 내려 보내고 하셨다.
그러다
지금의 목장터가 국유지 불하를 마직막으로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마침 아는 분이 이천 세무소장으로 낙향을 하시는 바람에 그분의 자문으로 국유지를 불하를 받으시어
14살 어리나이에 픔은 꿈을 이루셨다.
33ha 너른땅에 지금대통령의 부친께서 일으킨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기 전에
유실수를 산에 심어야 한다고 동생한테 밤 3말 사다 모를 기르라 해서 초등학생들 식목일에 동원하고 몇천 주의 밤나무를 심었다.
그댓가로 오르간을 사서 고향 초등학교에 그증도 하셨고..
밤나무가 크자 접을 붙인다고 당시 여주농고 임학과 학생들이 와서 짜르고 접 부치고 비니루 동여 매고
당시 품종으로 제일 좋은 은기를 묘종했다.
지금은 다 베어내고 죽었지만 그래도 50년 의 세월을 살은 밤나무를 몇주 남아 가을이면 작고 토실한 알밤을 선사해준다.
올해도 어김없시 바람이 불고 알밤은 떨어지고 체험오신 분들이 줍기도 하고 다람쥐 밥이기도 하고
밤알이 나 둥굴면
친정엄니를 돌아가신 느그 아부지가 심어 이렇게 어렷이 덕은 본다 하심서 열심히 밤을 줍고 계신다.
올 젯상에 놓아라...
어제는 아랫채 맨끝 올밤나무 제일 굵은 밤 주워 간수 하시면서 흐믓해 하신는 노모...
아버지 같은 남편을 먼저 가시고 16년 차 사시는 엄니의 아버지 사랑은 식지를 않는다.
니그 아부지 올추석에는 생율에 술 한잔 하시고 좋아하실거다...
괸시리 그분이 보고싶고 그분이 왜 그리 한맻친 이야기를 주절주절 하셨는지 내가 그나이되니 그속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