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체험목장을 하는 이유
오래된 사진에서 퍼옴
내 나이 열살 무렵
지금의 서울 대학교 자리 봉천동에 친정 아버지 친구 분이 소아과 샌님 이신데 처남에게 맞긴 목장이 있섰다.
젖소를 키우시는 곳 이었다.
어느 가을 날
아버지는 몸이 불편한 날을 위해 시발 택시 ( 지금의 코란도 형의 찝차) 기본 요금이 300원 인거 갔다.
빌려 태우곤 마른 개울길을 기어올라 목장에 데리고 가셨다.
물론 아는기사이니 그런 길도 아닌 길을 대절 하여 왕복 해주셨지
모른이 같음 가는 도중에 못 간다 화를 냇슬터
오래동안 아버지 단골 환자 셨다. 그 택시 기사님이
그때 처음 보았던 젖소의 껌벅이는 두눈 긴 속눈썹
착 하고 느린 소 의 선함이 평생이 업이 될 줄이야
지금 고 되지만 목장을 개방 하고 작은 동물을 키우고 목장에서 잠을 자게 하고 다닐려 오게 하는이유는
내가 돈을 벌기위함도 목적에 있지만
어릴적에 받은 목가적인 목장 풍경에 너그러움에 좋고 그것을 도시에서 사는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맘이 더 크다.
사람이 기억이 어느 정도 일지 모르지만
내 기억으로 서너살 적이 일이 지금도 생방송처럼 화려하게 기억이 된다.
지금 80줄에 작은 엄마 시집오던 해 ( 아마도 친정 아버지께서 동생 결혼 이라고 데리고 가신 듯
가기 전에 미장원에서 파마를 한 기억도 있고 버스에서 내려 하라지부 등에 업혀 시 오리길을 갖던 추억도 있고
작은엄마 시집 오는 가마가 눈속에 막혀 남자들이 불을 지피고 눈을 치우고
초례청에서 노란저고리에 연분홍 치마를 입은 숙모 모습이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숙모에게 이런기억을 말을하면 당신은 생각이 가물 거린다 하지시만
나 에겐 지금도 아름답고 아름다운 추억이다.
어제도 가족단위로 오시어 덩치큰 남자아이 ( 중학교 일학년) 강아지도 만지고 양 에게 풀도 주고 벨라 할
무니랑 놀면서
소시지 만들기는 나중에는 어른들 몫이 되어 버렸고
대부분 나가 가을 목장 속에 뛰여 노느라 땀 범벅 이지만
그이이들 엄마들 기우처럼 그냥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슬터
분명 어릴적 내가 받은 강한 인상이나 충격을 많이 지녓슬 시간이었슬거라고 자신해 본다.
( 대산 농총문화재단)에서 주심
어린아가 들이 도시에서만 지내다 농촌으로 와 젖소의 우유의 따스함과 살아있는 동물을 만지면 느낀 느낌이 어떨지
들녁에 향기와 너그러움 자연이주는 넉넉함에 아이는 무슨생각을 할련지 생각하게 한다.
벌써 이곳은 가을이다.
누우런 들녁
익어가는 고추 늙은 호박 붉게 익어가는 수수 ..꽃대가 올라오는 들깨 밭 ...
나날이 커가는 배추 이파리
알이 차 들어가는 무우
이런 소소한 일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제 kbs 라디오와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일이 도시와 농촌을 이어주는 사업으로 지금 말로 6차 산업이라 하지만
호들갑 스레 1차 농산물 생산 2차 가공 3차 제험이나 판매등을 묵고 따 지기전에 이미 이길을 가고 있는 성질 급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격어왔던 어려움을 이기회에 좀더 편하게 나아지고 변했음 한다고 따따 총 쏘듯이 일갈해 버렸다.
얼마나 많이 아이들 생각중에 나의 촌스런운 발상이 기억 될련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내딸과 같은 아이들이 더 많이 자라주기를 고대할 뿐이다.
각박한 세상을 미리 준비하고 자기일을 당당하 하면서 삶을 영위하는일
고단 하지만 ...아름답지 않나 싶다.
자연을 지키며 자기삶을 살아가는 일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