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 일기장

이게 빈둥지인가?

달진맘 2010. 5. 26. 03:46

 

 

 

         친정 동기간이 5남매 이다.

 다들 결혼 하여 자기식구들 데리고 사느라 형제들이 모일새도 없시 바쁘지만   작은딸의 결혼은 급작스레 결정이 되졌고  친정 엄마가 메신져가 되어 이리저리 알리니  다들 놀라 자빠질 형상 이었다.

 

결혼은 실전 이라드니  산속에서 소만 키우고 세상 물정 모르는 난 당황스럽기만  하다.,

 

우선은  놀라는 가까은 인척들에게  작은딸이 결혼을 하는 것을  설명하는게   아주 고역 이었다,

 

 

하긴 나도 놀랐는데  기습 작접 하듯이 번개 불에 콩 뒤겨 먹듯이 일사천리로  하는 결혼에 다들 이상해 했다.

 

 혹시 속도위반 해서 그리 급 하게 날을 잡았냐하는 질문이 제일 많았고  신랑에 대한  궁금증 이었다.

 

   무엇하는 사람이죠 ? 직장이  직업이 무어요 ? 나이는?   장남이유?

 학교는 ^^ 어떻게 만났대요?

그리고는 아까워 아까워 ....지아가 이까워 이런다.

어쩌는가 지 운명이고 지 팔자 인것을 누구와 누굴 비겨 아깝다는 소리를 하느냐고 일침을 가 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이왕 결정된 일 이니 축하 하고 잘 살기를 빌어 주자고 아이 편에서   방패가 됬섰다.

 

 

    자기소개서를 이력서처럼 써서 문서로 돌릴것을 그랬나보다 싶게  궁금해하는게 현실적인 이해 관계 였다.

 

 

 

 

  아직도 난 굳게 믿는게 있다.

   난 중매로 남편을 만났고 궁합도 사주팔자도 안 보았고  사랑에 눈이 쒸어 죽자살자 한 결혼도 아니었다.

   혼기가 찬 딸이 몸이 불편 하다는 이유로 시집을 못 보낼라 노심초사하는 부모의짐을 덜어  드리기로 결심한 이상

신랑 직업 이며 집안이면 가문이며 따질게 없섰다.

 

중매해준 분이 소개로 친정 집으로 선을  보러 찾아온 남자를 보고  첫느낌이 고지식해도 착해 보였다.

안할수 없는 결혼이라면     몸이 불편해도  며느리로 맞이하고 싶고 배우자로 선택해 살고 싶다는 남정네 따라  살기로한 이상  그대로 밀고 나갔다.

 

 결정을 하고 마음고생이 엄청 많았다.

 오죽 마음고생이 심 했으면  결혼후 임신이 안되 신부인과를 찾으니 신경성이니 마음 편하게 하라 자기 와이프도 시부님 모시고 사느라 근가 임신이 안되 늦게 이이를 낳았다며  상담중인 환자에게 자기고충을 말 해주면서  마음편하게 기다리라  했섰다.

하여 결혼후 7년만에  낳았다.

 

결혼생활 30년을 을 뒤돌아보니  요즘같이 성질 급한사람들이면 몇번 이혼장에 도장 찍을 일이 즐비 했지만  내 인생엔 이혼과 낙태는 없서야 한다는  하느님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켰다.

 

  참지 못하게 고통 스러우면 뒷산에 가서 데굴데굴 굴면서 울기도 했고  일에 빠쳐 소들  키우면서  낮선  낙농공부 하면서 보낸 세월도 많았다.

 

지금은 무덤덤하게 흐르는 강물 바라보듯이 지난 날을 이야기하지만  그래도 잘 참았다 싶다.

 

결혼준비는 복잡하고 어려웁고 조심 스러웠다.

 

일단은 아이 오빠가 차분하니 준비를 기획을 잘해 그가  하려고하는 의중을 알아내고  그게 크게 내가 생각하는 의도에서 어긋남이 없음 통과를 시켜 주었다.

 

 

신부가 나서서 해야 하는데 신부는 철두 없고 졸업후 바로하는 결혼이니 경제력도 없고 ..그냥 좋으면 시집 가는줄 알앗다

들어가는 의식 절차에 놀라 아이는 점점 말이 없서져 간다.

일본에선 결혼 풍습 이 한국갔지  않아요... 이런소리만 하고 ...

 

여기는 한국이야 한국 ...언니가 한소리 쥐어 박으면 기가 죽어 고개를 떨군다.

 

 

다 행이 아이오빠는  과분하지도  터무니 없시 욕심을 내지도 않고 어려운  농촌 처가집 살림살이를 이해를 배려를 많이 해주어 고맙기만 하다.

사돈어른도 과분한 결혼식보다는  실속있게  알차게 자분하게 하시고 싶다하시고 여간고마운게 아니었다.

 

양가 집안의 행사라 그런가  의식절차는 예전보다 많이 느슨해졋고  간소화   됬지만 어려운게 많았다.

 

 

예단 .살림집  ,혼수 ,신혼여행 , 사진촬영 .식장 . 청첩장 .주례 . 신부화장 드레스 ,신랑신부 예물 ,예복 ..

 

  주중에 미리 기안을 잡고 인테넷으로 알아보고   주말에  에비사위가 신부를 데리고 서울로가  이것저것 예물은 준비를  했고  안사돈 께서 동행하시어 면세점에서 구입을 해 주셨단다.

 

예물 신랑 것은 예산을 뽑아 오라했다

바빠 갈 시간도 없고 둘이 알아 정하면  내형편에 해줄만 하면  가급적 사위맘에  드는것으로 해 주고 싶었다.

 

출장을 잘가는 사위가 면세점에서 구한다해서  그리하도록 했다.

 

 

아직도 난 촌스러운 기질이 있는지

함도 받고  예복은 제대로 챙겨주고 싶어 요즘 아파트에서는  생략을 한다고 하지만

신랑 사주단자도   안받고 하는 예식은 아니다 싶어  함은  받기로 했다,

 

 

지난주에  산속에서 천연염색 공방을 하는 분을 찾아가 신랑 입을 한복과  두루마기를 마추어 주었다.

엄마 요즘 누가 이런거 입어요??

 

타박하는 신부에게 세상이 변해도 전통 예식중에  해야할 의식은 진행 해야하다 말해 주었다.

어른이 되었으니  복식도 격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정월명절에 세배를 드릴적이나  집안 큰일에 두루마기 입을 일이 생길거다 라고 말을 막았다.

 

 

결혼식 전에 사진 촬영을 한다기에    서 두른 한복 ...

마추는 길에 신부의 관례 벋김 녹의 홍상도  두루 마기도  했다.

색감이  마추어야  사진이 잘 나온다고  하는데  안사돈께서 친정엄마가 아는데가 있은 그리가서 해라 하시어

신부 것도  친정어미가 골라 주었다.

 

함속에 넣은 사주보도 보고  들어갈  것들을 조목조목 예비사위에게 일러 주고 왔다.

돈은 크게 안들이고  전통격식을 지키고 싶어진다.

 

도시 총각이 촌 으로 장가를 올려니  장모님 의 고집 따르느라   고생이 많다,

 

 

청청장도 그리준비를  했고

예단 보낼일이 남았다.

 

그게 제일 어려운일인듯 싶다.

 

이번주에 그것을 해결해야하고 신부드레스 보러 다니고 야외결혼이라 준비할것 챙겨야하고 장소가 신부집이라

내가 더 챙기고 준비할게 많은듯 싶다.

 

구제역으로 방문객이 없는게 이렇게 딸 여위라고 하느님뜻 인것  같다는 생각에 미쳤다.

 

그런데^^

 

딸이 호적도 파 가고 신랑따라 가고 남  많이 허전할것 같다.

 

 

 

주말에 작은아이가 지오빠따라  가드만 바빠 전화도 없시  이틀을 보내는데 어련히 잘있겠지 오빠가 잘챙겨주겠지 안도감이 들면서도 딸의 소행이 서운 했다.

 

 

25년을 고이 키운 부모보다  사랑하는 오빠가 그리좋은지 싶어 딸년  심보가 서운해 나무그늘아래 쏱아지는 풀만 뽑아 댔다.

 

서운해서...

 

 

오후에 온 아이 데리고 한복집에 가는데 길가 난전에서 파는 참외를 보더니  아버님 어머님이 좋아시는데 오빠 참외 사가요^^

 

이뇬아,....나도 참외 잘 먹는다.... 꿀꺽    그소리 참느라 혼이 났다,